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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文友會

1981년에 발족했을 당시의 수필문우회(隨筆文友會)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수필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의 작은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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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회원 수도 50명 가까이 늘었고, 1991년 8월에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적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을 계기로, 이 모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수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분위기가 회원들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수필문우회가 주체로 되어 새로운 수필 잡지를 내자는 의견이 회원들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나 개인으로서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서 고생을 자초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다는 느낌이 앞섰고, 나의 본령인 철학에 관한 잡지를 이미 발행하고 있는 처지에서,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으리라는 예측이 뚜렷했던 것이다.

잡지를 발간하자는 의견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모임이 활기를 얻기 위해서 새로운 구심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한국 수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작더라도 탄탄하고 개성이 뚜렷한 잡지를 발행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의 타당성을 부인할 까닭이 없었다.

문제는 탄탄하고 개성이 뚜렷한 수필 잡지를 발행한다는 일이 뜻대로 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에 있었다. 새로운 시도가 실패할 염려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가능성이 없다고 아예 포기할 까닭은 더욱 없었다. 순수한 동기를 견지하고 헌신적으로 노력만 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한자 문화권에서 수필 내지 산문은 일찍부터 문인들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고,현대인을 위해서도 좋은 수필이 삶을 윤택하게 함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수필을 아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수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크게 불안스러운 상태이다. 수필의 저변 인구가 많음에 비하여 그 질적 수준은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고, 문단 또는 언론으로부터 받는 관심 내지 대접도 따라서 미미한 편이다.
자비 출판의 길이 열려서 많은 수필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수필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것이 수필을 아는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이다. 그리고 수필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용이 충실한 수필 잡지가 여럿 나와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수필 잡지를 시도하자는 사람들의 주장이요 명분이다.

반대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정어린 반대도 있었고 오해로 인한 비난도 있었다. 많은 말이 오고간 끝에 결국 새 잡지를 만드는 쪽으로 결정이 났고, 여기 이렇게 창간호를 선보이게 되었다. 창간호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좋은 잡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차례의 편집위원회를 열었다. 더러는 제출된 원고에 대하여 변경 내지 수정을 간청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하였다. 편집위원 5명의 원고 가운데 세 편에 대해서도 변경 내지 수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나도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원고를 다시 썼다.

좋은 잡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러운 편이 아니다. 한 편의 좋은 작품을 얻기도 어려운 것이 수필이다. 주옥 같은 글만으로 창간호를 채우고 싶었던 것은 한갓 욕심이었고, 대체로 쓸 만한 작품이 상당수 있다는 평가만 내려져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전국의 필자와 독자 여러분의 조언과 성원을 얻어서 점차 향상의 길을 걷고자 한다.

끝으로 이 창간호의 발행을 위하여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께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창간 취지에 찬성하여 기꺼이 옥고를 보내 주신 필자 여러분. 제자(題字)를 써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웃고 승락하신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선생.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신 회원 여러분. 이해와 득실을 떠나서 이 잡지의 제작과 보급을 맡아 주신 김양일(金良一) 원장. 그 밖에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여러분을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995년 8월
수필문우회 회장 김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