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숲

 

 나무는 밤이 되면 사랑을 한다.

 태양이 눈부신 한낮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산에 끼여들었던 모든 이들이 돌아가면 그제서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푼다. 그리곤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랑의 몸짓을 교환한다. 나무의 사랑은 완곡하면서도 절절하다. 바라보기만 하여도 숨이 막힌다.  

 밤마다 산에 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인 밤 11시쯤 남편과 함께 집 뒤에 있는 불암산에 오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산 중턱까지 외등이 켜져 있어 손전등이 없어도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처음엔 조금 무섭기도 했으나 차츰 밤의 숲향기에 취하여 이제는 나도 모르게 밤만 되면 운동화를 신고 나서게 된 것이다.

 처음엔 숲에 고여있는 정적만을 느꼈다. 등산객들로 늘 부산하던 그곳이 그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감격했다. 고요함은 잡다한 소리에 시달리던 귀를 쉬게 해주었다. 귀가 쉬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움직이며 내는 모든 소리가 차단된, 완벽한 고요가 머물러 있는 밤의 숲은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그러다 차츰 산이 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이거니 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수런거리는 나뭇잎들이 정적에 휩싸인 산을 흔들어놓는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늘상 부는 것이 아닌데도 무엇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만히 멈추어 서서 귀기울여보면 감지되는 미세한 소리. 한참 후에야 그것이 산에 사는 모든 생물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느꼈던 정적은 사라졌지만 그리 아쉽지 않은 것은 생명의 율동이 정적보다 더 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산에 들면 가만가만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걷는다. 행여 그들의 고귀한 호흡을 흩어놓을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산의 精氣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깊은 밤, 달빛은 저 홀로 빛나는데 숲 속에선 나무들이 사랑을 하느라 분주하다. 아무리 애써도 떨어진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나무들이지만 밤이 되면 놀라운 향연이 벌어진다. 나무를 결합시켜 놓는 것은 무심한 듯 흘러가는 달빛이다. 나뭇잎 틈새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은 길게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 나뭇잎이건 가지건 손을 잡게 한다. 잔잔한 바람결에도 온 숲이 일렁이며 가까이 다가서고, 한나절의 이별을 영겁처럼 서러워하며 서로서로 얼크러진다. 나무의 형체는 여전히 꼿꼿한데 마음은 그림자로 만나 농밀한 사랑을 나눈다. 숲의 정령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짝을 찾아 나선다. 이윽고 산이 움직인다. 우람한 바위가 춤을 추고 차디찬 계곡의 맑은 물이 노래를 한다. 바람과 달빛과 나무가 어우러져 생명의 잔치를 벌인다. 스스로의 즐거움은 아예 접어두고, 오로지 종족번식만을 위해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나무들의 그 은밀한 의식은 얼마나 신성한가.

 누가 나무를 기도하는 聖者라 했던가. 누가 나무를 안분지족의 대명사라고 하였던가. 내가 보기엔 나무만큼 치열하게 사는 생물체가 지구상에 또 있나 싶다. 뿌리는 뿌리끼리, 가지는 가지끼리 목숨 걸고 싸운다. 작은 풀포기조차 뿌리 채 뽑아내기 힘들거늘 하물며 나무라 이름하는 것들임에랴. 팔뚝만한 줄기를 지닌 나무라도 그 뿌리는 사방을 향해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것을. 수맥을 찾아 없는 길도 만들며 서로들 얽혀있는 뿌리를 보면 땅속은 전쟁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머리카락보다 가늘어 잘 보이지도 않는 소나무의 실뿌리가 바위를 쪼개고, 단단한 바위틈을 비집느라 휘어진 뿌리와 균형을 이루려고 줄기도 그만큼 휘어진다. 가파른 바람벽에 뿌리내린 소나무의 줄기가 기묘하게 뒤틀린 것은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방식이다. 나무의 삶의 법칙만큼 정확한 것도 없을 게다. 줄기를 보면 땅속에 있는 뿌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소나무는 독성이 강해 그 아래 다른 나무들이 살아남질 못한다. 그 독한 소나무를 누르는 게 아카시아다. 햇볕 없이는 살 수 없는 소나무를 제치고 훌쩍 키를 세운 아카시아는 한껏 가지를 펼친다. 지상의 싸움이 처절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아카시아가 마음껏 활개를 펴면 그늘에 가려진 소나무는 결국 목숨을 잃는다.            

 산에서 피는 코스모스는 들에서 피는 것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 살아남기 위해선 햇빛을 받아야 하니 나무들 그림자를 비켜가며 키를 세운다. 저마다 발돋움하고 있는 모습들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사람들만큼 생명을 가볍게 취급하는 생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게 살아남은 나무들이 사랑을 하는 것이다.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어찌 눈물겹지 않겠는가. 키 낮은 풀잎들이 서로 어깨 기대고 있는 모습, 단단한 바위틈에서 피어난 제비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는 모습, 비명처럼 향기 뿜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무수한 꽃들, 나무들... .

 우리는 산에 가서 사랑을 배운다. 중년이 된 이 나이에, 사랑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 이제야 비로소 사랑에 눈뜬다. 비겁하지 않고 서로를 속이지 않는 나무의 사랑법이 귀하게 다가온다.

 이제 나무들은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날마다 조금씩 산은 우리를 나무로 만들어간다. 말을 아끼게 하고, 소리내지 않고 걷는 법을 익히게 한다. 때론 가만히 멈추어 서서 팔을 벌려본다. 가슴 가득 파고드는 청정한 공기, 생명의 향기. 아! 나도 사랑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오늘밤에도 산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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