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전망대

 

 비가 오는 날은 공항전망대에 나서볼 일이다. 떠나는 자의 애틋함과 돌아오는 이의 안도감이 빚어내는 마음무늬로 인해 공항은 언제나 들떠있다. 정을 나누던 이들을 떠나보내고 때론 맞이하러 공항에 나갈 때마다 나는 일탈의 강한 충동을 느낀다. 낯선 타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성큼 몸을 실어버리고픈 갈망에 전율한다.

 작년 여름부터 공항으로의 발길이 잦아졌다. 지방으로 발령이 난 남편이 토요일마다 비행기를 이용해 귀가하기에 마중하러 나오느라 그리 된 것이다. 길이 막힐까봐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의외로 소통이 잘 되는 날은 너무 일찍 도착하여 대합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 날도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빽빽한 인파 속에서 앉을 자리 하나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다 건물 동쪽 벽에 붙어있는 '공항전망대'란 글씨를 보았다. 전망대? 그 낱말은 내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난 화살표를 따라 전망대를 찾아 나섰다. 6층까지 가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계단과 로비 한 귀퉁이를 거쳐 다시 계단으로 이어지는 전망대 오르는 길은 숨을 가쁘게 했다. 회색 철문을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홀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비행장이 한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등받이 없는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생각보다 한적한 그곳에 들어서서 밖을 향하고 앉았다. 나란히 줄맞춰 서 있는 비행기들이 비를 고스란히 맞고 서 있었다. 비행기가 마치 날개접고 앉아있는 새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늘과 구름빛을 닮은 우리 나라 비행기들 사이로 異國의 비행기들이 바삐 오간다. 몇 분 사이로 계속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신기하게도 서서히 긴장이 풀린다. 잔뜩 조였던 나사가 헐거워지듯 분주했던 심신이 느슨해진다. 그리곤 허공에서 불안스레 허둥거리던 마음이 땅에 발을 디디듯 안온해진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마음 한 자락씩 얹어본다. 마음 시리게 한 이들 하나씩 실어 떠나보내고, 그리운 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트랩을 오르기도 한다. 사람 발길 뜸한 곳엔 비행기가 서지 않을까?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장엄하게 지는 노을이 광활하게 펼쳐진 모래언덕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려내는 사하라사막이나 하늘이 안보이도록 숲이 우거진 아마존의 정글 속이다. 그곳에선 시간이나 유한한 생명쯤은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테니까. 때로는 버뮤다에도 가고 싶고, 블랙홀에 빠지고도 싶다. 지금과 차원이 다른 세계로의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면 난 주저없이 정체불명의 우주선에라도 오를 것이다. 실종된 수백만 개의 위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제2의 우주로 날 데려다줄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 곳에서 새로운 탄생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또 하나의 비행기가 유선형의 몸을 천천히 돌리며 선회하다 활주로 끝에 선다. 비행표지등을 깜박거리며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린다. 서서히 움직이다 속도를 내어 달린다. 멀리뛰기 선수가 구름판을 차고 공중을 내달리듯 바퀴가 들리며 사선으로 나르는가 싶더니 빨려 들어가듯 이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삶과 죽음도 저렇게 나뉘어지는가. 지금 이렇게 땅 위엔 비가 쏟아져내려도 구름 속을 뚫고 올라가면 그 곳엔 본연의 푸른 하늘빛이 눈부시게 존재하고 있음을 비행기를 타본 이들은 알고 있다. 두터운 구름층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내는 기능이라도 가진 걸까. 보이는 삶과 가려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비행기의 운행.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뿐 비행기는 여전히 창공을 날고 있는 것이다.

 육신을 입고 잠시 이승에 살다 누에가 허물벗듯 육신에서 영혼만이 빠져 나와 빛의 세계에 다다르면 고통과 어둠 없는 그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죽음으로 갈라지는 우리들의 만남을 그토록 애통해하지 않아도 될텐데...

 

 공항에 올 때마다 철새 도래지를 연상한다는 친구가 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듯 매몰차게 떠나가도 어느 곳에선가 회귀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태 묻은 곳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귀소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공항은 떠나고 돌아오는 삶의 驛舍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자들의 도약대다. 오랜 항해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쉼터이다. 그곳에선 개선장군도 패잔병도 같은 대열에 선다. 하늘이 까맣게 덮이도록 날갯짓하며 떠나고 돌아오는 철새들의 습성을 닮은 너와 나, 우리는 결국 단단한 大地를 밟기 위해 멀고 먼 고단한 여행을 하는 건 아닐지.

 드넓은 공항 가운데에서도 전망대는 그리움을 잉태하고 풀어내는 공간이다. 보고 싶어도 쉽게 만날 수 없거나 그리움이 목에까지 차 올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는 사람은 공항전망대에 나서 보라. 그곳은 보고픈 이를 불러올 수도, 그리운 이에게 다가갈 수도 있게 해주는 마음의 통로를 그대에게 선사할 것이다. 당신의 그리움을 다스려줄 수 있는 공간은 세상에서 오직 그곳뿐이다.

 천지가 미세한 물방울로 가득 차있는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습기 머금어 출렁이는 가슴 속 음률이 전망대 유리창에 빗방울 음표 되어 뿌려진다. 잠자고 있는 비행기 날개에 낱말 하나 적힌 왼손을 얹는다. 나의 간구를 실은 비행기는 언젠가는 해답을 갖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또각또각 경쾌한 걸음으로 전망대에 다시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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